살아있는 말씀, 깨어있는 교회

다시 시작하면 된다.


2017.5.14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기도 목사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Jesus straightened up and asked her, "Woman, where are they? Has no one condemned you?" "No one, sir," she said. "Then neither do I condemn you," Jesus declared.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John 8:10-11 NIV)


얼굴을 들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의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 미천한 여자를 쳐 죽이려고 손에 돌멩이를 들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누가 창녀가 되고 싶어 시궁창 같은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세상살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살아가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여기까지 굴러온 것입니다.


이날도 먹고는 살아야하겠기에 돈 될 만한 것은 몸뚱이 밖에 없으니 지나는 음흉한 남정네들에게 몸뚱이를 맡겼다가 발각된 것입니다. 머리는 풀어헤치고 옷은 찢겨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인을 길 한복판으로 끌고 온 무리는 화가 난 도둑놈들이었습니다. 어두운 밤이면 못된 짓은 혼자 다하며 다니는 사회지도층들이었습니다. 밝은 대낮에는 얼마나 거룩하고 깨끗한척하고 다녔겠습니까?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그 여인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이 여인을 돌로 쳐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눈감아 주어야 하는가?" 사실은 예수를 함정에 몰아 죽여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예수 때문에 자신들의 모습이 초라해지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거추장스러운 예수를 제거해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여인을 율법에 따라 돌을 치라하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이요, 용서하고 사랑하면 율법을 어기는 일이 되어 예수를 궁지에 몰아 재판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돌멩이로 무엇인가 땅바닥에 글을 쓰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한참 무엇인가를 다 쓰신 후 일어나면서 하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고는 다시 앉으셔서 땅바닥에 계속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쓰셨을까요?


그 당시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신 내용은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려고 모여든 사람들의 내연의 정부 이름을 하나하나 쓰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순간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들이 돌멩이를 내던지고 슬금슬금 다 도망하고 난 빈 자리에 예수님과 가련한 창녀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걸레처럼 찢긴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8:11)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살아 왔는지 묻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날의 허물도 죄악도 실수도 실패도 다 없던 것으로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위대한 인생의 리더는 언제나 다시 한 번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은 누가 되었든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을 꼽으라면 서슴지 않고 유대인을 뽑습니다. 유대 민족이 수천 년의 고난 많은 역사 가운데서도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생존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성경을 생존의 힘으로 믿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지켜내는 절기 가운데 요벨 즉, 희년(쥬빌리 Jubile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매년 50년이 되는 해마다 희년을 선포합니다. 희년은 삶과 역사를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실패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도 다시 시작합니다. 앞서가고 달려가던 사람도 다시 시작합니다. 인생과 역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삶과 사상이 고난 가운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것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버텨내고 기다리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생명의 사상이었고 신앙이었습니다.


실패했습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죄를 범했습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살아온 지난 살에 대하여 잘함도 못함도 묻지 마십시오.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남는 것이 있다면 남은 대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실패도 실수도 허물도 죄악도 묻지 마십시오. 아픔도, 상처도, 영광도, 잘 잘못도, 묻지 마십시오. 오직 인생과 역사를 다시 시작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이 기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