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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겸손하자!

2017.5.22


초심으로 겸손하자!

마태 18:1-4

이 기도 목사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At that time the disciples came to Jesus and asked,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He called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among them.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Therefore,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Matthew 18:1-4 NIV)


누구나 처음마음은 순수하고 겸손합니다. 처음마음은 때 묻지 않은 청순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처음에 품었던 순수함과 겸손함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원래는 안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변질되어 갑니다. 어느 날부터 야심이 많아지며, 명예욕이 강해지고, 허세를 부리며, 교만이 싹틉니다.


교만과 겸손은 대칭적입니다. 겸손은 헬라어로 humus, 흙이라는 뜻으로, 땅바닥으로 내려간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교만은 huperephanos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다.”는 뜻입니다. 내려가느냐, 올라서느냐, 입니다. 특히 계급과 지위, 자리와 명예에 욕심을 낼수록 이미 교만해진 것입니다. 처음마음의 겸손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마음의 겸손을 상실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이루실 하나님 나라에서 과연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냐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높고 낮음의 서열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였습니다.(1절)예수님은 겸손의 본질을 가르쳐주시고자 어린아이를 통한 실물교훈을 주십니다.


아마 천국 입구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른 노릇하려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음.」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Andrew Murry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야할 근본적이고 진실한 관계는 잃어버린 겸손의 회복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 시대는 더욱 더 겸손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처음마음으로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높아지려는 야심에서 낮아지려는 마음으로 바뀌어야합니다. 낮아지려고 마음먹으면 심사가 편합니다. 자존심 상할 일도 없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용감한 자요, 낮출 줄 아는 자가 큰 자입니다.(4절. 마태 23:12)

톨스토이는 “인간은 겸손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지고, 굳센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겸손해질수록 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적이 많고, 겸손한 자에게는 벗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리를 연연하지 않습니다. 맨바닥이건 땅바닥이건 괘념하지 않습니다. 자리 배열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앞자리, 뒷자리, 옆자리, 어디든 가라는 곳으로 옮겨 앉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마음이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마음으로 겸손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깨끗이 비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예의범절 중 하나가 있다면 자리배정입니다. 어느 집이든지 안방에는 자리가 있습니다. 윗목이 있고 아랫목이 있습니다. 신분과 연령에 따라 자리배정이 결정됩니다. 요즘도 어느 모임에서든지 자리배치가 중요합니다. 신분과 서열에 따라 줄을 섭니다. 중앙에 서 계신 높은 분 옆에 가까이 배치될수록 자기도 꽤 높은 서열에 끼였다고 우쭐합니다.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서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가 중앙에 찍힌 사진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농구 코치 John Wooden의 선수훈련 지침은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것”(Selflessness)이었습니다. 자기를 들어내려고 단독 드리볼 하다가 공을 뺏기고 맙니다. 중국 대륙선교의 신기원을 이룬 허드슨 테일러는 “당신은 당신의 한 일에 대하여 교만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비우고 살수록 행복합니다.


시인 박 목월 씨의 ‘빈 컵’이라는 시에서는 “빈 컵에 깨끗한 물이 담겨 있을 때 예쁜 꽃을 꽂고 싶어진다.”고 읊습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주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한 신학자가 사도 바울은 일평생 처음마음의 겸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지 몇 해 되지 않은, AD. 59년에 그는 자기 자신을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고린도전서 15:9)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5년이 지난, AD. 64년에 바울은 스스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베소서 3:8)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1년 후인 AD. 65년에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디모데전서 1:15)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기독교 문학가 C.S 루이스는 “만일 어떤 사람이 겸손해지고자 한다면, 내가 그에게 말할 수 있는 첫 단계는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교만을 깨달아야 겸손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처음마음의 겸손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