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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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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6


2018 고난주간 묵상

두 가지의 죽음

이 기도 목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칠십 평생을 목회하신 한 목사님이 은퇴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평생 목회하면서 자기 집을 팔아 교회에 바친 교인도 보았고, 자기 땅을 팔아 하나님께 바친 교인도 보았지만, 자기 성질 죽여 하나님께 바친 교인은 못 보았습니다.” 집 팔고 땅 팔아 하나님께 바치는 것보다 자기 고약한 성질 죽여 하나님을 따르기가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짓고 십자가에 달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는 두 가지로 죽습니다. 하나는 죄짓고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 그는 법적으로 죽습니다. 호적에서 이름이 사라집니다. 이름 위에 빨간 줄이 그어집니다. 죄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삶을 마쳤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리면 끝납니다. 어떤 법도 다시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수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죽었으나 아직 육체적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십자가가 잔인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교수형이나 총살형은 한 순간에 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은 못이 박힌 순간부터 머리, 손발에서 피가 흐르는 순간, 고통으로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나중에는 횡경막이 내려 앉아 결국 숨을 쉬지 못하고 심장이 멎어 죽는 순간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은 죄수에 따라 다릅니다. 예수님은 여섯 시간 걸렸습니다. 어떤 죄수는 못을 박히자마자 죽습니다. 어떤 죄수는 하루 이틀 혹은 사흘이상 발버둥 치다 죽습니다. 일주일이상 죽지 않고 버틴 사람도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는 두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먼저 법적으로 죽고 다음 육체적으로 죽습니다. 법적으로는 순간적으로 죽고 육체적으로는 시간이 걸립니다.


갈2:20은 법적인 죽음입니다. 법적인 죽음은 실제 우리 육체가 죽는 죽음이 아닙니다. 도적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달라지는 죽음이 아닙니다. 법적인 죽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문법적인 형태는 수동형입니다. 내가 나를 못 박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못 박은 것입니다. 나는 나를 못 박은 행위의 주체가 아닙니다. 수동형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행한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시제도 과거형입니다 ”못 박혔나니“ 지금 내가 나를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행동의 주인도 아니고 주체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주체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때 있었든 없었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그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데 다른 사람이 죽은 것으로 내가 죽은 것을 대신해 주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갈5:24은 다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내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행위의 주체가 나입니다. 그나마 현재형입니다. 지금 내가 나를 못 박는 것입니다. 헬라어 현재형은 현재진행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계속 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갈2:20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갈5:24절은 “내가 내 정과 욕심을 스스로 못 박는 것”입니다. 갈2:20은 법적인 죽음입니다. 갈5:24절은 육체적 죽음, 도덕적 죽음입니다. 갈2:20은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일어났습니다. 갈5:24은 내가 평생에 걸쳐 할 나의 죽음입니다. 고전15:31에 나오는 죽음이 이 죽음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은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평생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죽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과거의 죽음이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현재적 죽음입니다. 하나는 “죽었다". 다른 하나는 “죽어라”입니다. 두 가지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영적인 과정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을 때 우리가 함께 죽었다는 증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매년 유월절마다 대제사장이 두 마리의 양을 잡습니다. 하나는 자기를 위하여 하나는 백성을 위하여 잡습니다. 먼저 자기를 위하여 한 마리를 잡을 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양을 대신 드립니다.” 이 때 양은 대제사장의 죄를 뒤집어씁니다. 그리고 죽입니다. 양이 죽는 순간 대제사장의 죄도 함께 죽습니다. 또 한 마리를 잡습니다. 또 안수하여 백성의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여호와여, 백성들의 모든 죄를 이 양에게 전가시킵니다. 양과 함께 백성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양을 먼 광야로 내쫓습니다. 양이 사라지는 순간, 백성들의 죄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사라집니다. 본래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양이 책임집니다. 동일화의 원리입니다. 양과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같은 존재입니다. 양이 죽을 때 사람도 함께 죽고 양의 죽음으로 결국 사람이 삽니다. 이것이 구약의 “함께”입니다.


신약의 바라바는 강도며 살인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예수님과 함께 백성 앞에 섰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습 때문에 빌라도가 묻습니다. “너희는 이 둘 중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느냐? 강도 바라바냐 자칭 하나님의 아들 예수냐?”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바라바요, 바라바는 놓고 예수는 죽이시요”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라바도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 대신 바라바가 살았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 바라바는 함께 십자가 진 것입니다. 본래 바라바가 져야 할 십자가를 예수님이 질 때 그 십자가는 “함께” 진 것입니다. 결국 죄 없는 예수님이 죽을 때 바라바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은 후 바라바는 살았습니다. 신약성경의 “함께”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고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미국 선교사로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했던 워치만 니 목사님은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신 것은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롬6:11을 읽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때 그 눈에 ‘여기라’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치 않구나.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고 여겨야 하는구나.”


여긴다는 말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확신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다녔습니다. “형제님은 제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형제님도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믿음이 그를 살렸습니다. 그때부터 그가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자가 누구입니까? 자기를 죽었다고 여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려고 발버둥 치니까 세상이 어렵지 내가 죽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왜 힘듭니까? 자기가 죽지 않고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왜 자주 상처를 받습니까?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죽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확실히 믿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나는 죽었다. 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죽었다. 그 대신 내 안에 예수님이 산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으로 산다.” 이것을 외치고 고백하면 그때부터 세상은 쉬어 집니다. 법적으로 나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육적 나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나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나는 하늘에 속 한자 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능력이며 희망이요 생명입니다.


이 기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