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18
하나님 나라의 기둥 같은 일꾼 (왕상 7:19-22)
이 기도 목사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솔로몬 성전의 전면 좌우편에는 두 기둥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기둥은 야긴이라 불렀고, 왼편에 있는 기둥은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료는 모두 놋이었습니다. 18규빗 되는 높이에, 둥그런 공 같은 기둥머리를 5규빗 되게 만들었습니다. 석류를 한 줄에 100개씩 두 줄로 둘렀습니다. 기둥머리에는 그물 모양을 만들었고, 백합화를 본 따서 조각하였습니다.
성경은 일 잘하는 사람을 기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은, "기둥 같은 일꾼"은 어떤 것을 기둥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기둥은, 천정이 건물을 바치고 있는 기둥이 아니라, 건물 앞에 상징적으로 서 있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둥 같은 일꾼을 상징합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야긴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He shall establish)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In Him is strength)라는 뜻입니다. 둘 다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금값만도 약 900조원이나 들었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여 솔로몬이 세웠지만, 인간이 세운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전쟁에 승리하게 하셔서, 성전 건축을 위한 물질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솔로몬에게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아스(능력)를 가지고 하나님이 야긴(세움)하셨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한 두 번 하신 말씀을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는 도다"(시62:11)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기둥 같은 일꾼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머리의 모습을 성경기자는 이렇게 기술하여 주고 있습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이 두 기둥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에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이 줄을 지었더라(17-20). 기둥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형의 땋은 것을 만들었습니다(7:17).
그물은 우리에게 고기 잡는 모습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석류를 100개씩 두 줄로 두 기둥에 사슬로 연결시켰습니다. 모두 400개의 석류가 달렸습니다. 석류 속의 알맹이들은 많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한 석류에 761개 정도의 알맹이가 들어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는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 기둥에 석류를 사슬로 매달고 그물처럼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그물로 건져,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슬로 엮어 하나님의 집으로 모으는 모습이, 성전의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구원을 기둥으로 삼는 사람이 교회에 기둥 같은 교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매고 계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기둥 같은 일군들을 사용하셔서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일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물을 들고 사슬을 들고 석류같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나갈 때, 기둥 같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19절). 기둥에는 백합화 모양이 있습니다. 성전곳곳에도 백합화의 모양이 많이 있습니다. 백합은 그리스도의 순결,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의 모든 아름다움이 백합화 하나만 못 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눅12:27). 히브리말로 백합을 "슈샨'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아름다움, 백색, 순결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기둥과 같은 일꾼입니다.
어둔 밤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귀중품이 든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려 어둠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그 여인의 뒤를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은 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따리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참 만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보따리를 훔치려고 따라온 강도입니다. 당신이 나를 믿어주고 맡길 때 나는 도저히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백합화 같은 사람이 기둥 같은 사람이 됩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솔로몬 성전 기둥에서 원만한 일꾼의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둥글다는 것입니다. 두 개라는 것은, 기둥 같은 일꾼은 연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에 들어가서 조화를 이룰 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70문도를 전도하려 내보내실 때 두 사람씩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권입니다. 구약은 율법서, 선지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갈 때, 부활의 이삭을 보기 위하여 두 증인이 같이 갔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두 천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 두 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원만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40세에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정도까지 정확하고 불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80세에 성령을 받고 나서는, 모두를 참으며,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도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정확하게 살았습니다. 스데반을 불의한 사람인 줄 알고 돌로 쳐 죽이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에는 모두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격이 둥글둥글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기둥 같은 일꾼이 될 수가 있습니다.
모 대학의 총장에게 학생들로부터 항의 투서가 전달되었습니다. 교수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이 유명 대학에 교수가 되었다고 권위주의에 빠져 있다는 투서였습니다. 총장은 교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수님들, A 학점과 B학점을 받은 학생들을 잘 대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어느 날 우리 학교에 교수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C학점 받은 학생들에게 항상 친절하십시오. 그들 중에는 언젠가 백억 원을 가지고 돌아와서 기부할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에 교수들의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주여!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 목사
2018.7.18
하나님 나라의 기둥 같은 일꾼 (왕상 7:19-22)
이 기도 목사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솔로몬 성전의 전면 좌우편에는 두 기둥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기둥은 야긴이라 불렀고, 왼편에 있는 기둥은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료는 모두 놋이었습니다. 18규빗 되는 높이에, 둥그런 공 같은 기둥머리를 5규빗 되게 만들었습니다. 석류를 한 줄에 100개씩 두 줄로 둘렀습니다. 기둥머리에는 그물 모양을 만들었고, 백합화를 본 따서 조각하였습니다.
성경은 일 잘하는 사람을 기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은, "기둥 같은 일꾼"은 어떤 것을 기둥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기둥은, 천정이 건물을 바치고 있는 기둥이 아니라, 건물 앞에 상징적으로 서 있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둥 같은 일꾼을 상징합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야긴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He shall establish)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In Him is strength)라는 뜻입니다. 둘 다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금값만도 약 900조원이나 들었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여 솔로몬이 세웠지만, 인간이 세운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전쟁에 승리하게 하셔서, 성전 건축을 위한 물질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솔로몬에게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아스(능력)를 가지고 하나님이 야긴(세움)하셨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한 두 번 하신 말씀을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는 도다"(시62:11)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기둥 같은 일꾼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머리의 모습을 성경기자는 이렇게 기술하여 주고 있습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이 두 기둥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에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이 줄을 지었더라(17-20). 기둥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형의 땋은 것을 만들었습니다(7:17).
그물은 우리에게 고기 잡는 모습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석류를 100개씩 두 줄로 두 기둥에 사슬로 연결시켰습니다. 모두 400개의 석류가 달렸습니다. 석류 속의 알맹이들은 많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한 석류에 761개 정도의 알맹이가 들어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는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 기둥에 석류를 사슬로 매달고 그물처럼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그물로 건져,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슬로 엮어 하나님의 집으로 모으는 모습이, 성전의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구원을 기둥으로 삼는 사람이 교회에 기둥 같은 교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매고 계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기둥 같은 일군들을 사용하셔서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일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물을 들고 사슬을 들고 석류같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나갈 때, 기둥 같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19절). 기둥에는 백합화 모양이 있습니다. 성전곳곳에도 백합화의 모양이 많이 있습니다. 백합은 그리스도의 순결,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의 모든 아름다움이 백합화 하나만 못 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눅12:27). 히브리말로 백합을 "슈샨'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아름다움, 백색, 순결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기둥과 같은 일꾼입니다.
어둔 밤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귀중품이 든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려 어둠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그 여인의 뒤를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은 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따리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참 만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보따리를 훔치려고 따라온 강도입니다. 당신이 나를 믿어주고 맡길 때 나는 도저히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백합화 같은 사람이 기둥 같은 사람이 됩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솔로몬 성전 기둥에서 원만한 일꾼의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둥글다는 것입니다. 두 개라는 것은, 기둥 같은 일꾼은 연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에 들어가서 조화를 이룰 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70문도를 전도하려 내보내실 때 두 사람씩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권입니다. 구약은 율법서, 선지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갈 때, 부활의 이삭을 보기 위하여 두 증인이 같이 갔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두 천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 두 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원만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40세에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정도까지 정확하고 불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80세에 성령을 받고 나서는, 모두를 참으며,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도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정확하게 살았습니다. 스데반을 불의한 사람인 줄 알고 돌로 쳐 죽이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에는 모두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격이 둥글둥글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기둥 같은 일꾼이 될 수가 있습니다.
모 대학의 총장에게 학생들로부터 항의 투서가 전달되었습니다. 교수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이 유명 대학에 교수가 되었다고 권위주의에 빠져 있다는 투서였습니다. 총장은 교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수님들, A 학점과 B학점을 받은 학생들을 잘 대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어느 날 우리 학교에 교수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C학점 받은 학생들에게 항상 친절하십시오. 그들 중에는 언젠가 백억 원을 가지고 돌아와서 기부할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에 교수들의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주여!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 목사